앨범 발매 공연으로 다시 찾은 뉴욕
펜더가 2026년 10월 16일 공개한 다큐멘터리 «The One. For New York.»는 앨범 발매를 기념해 뉴욕에서 열린 다섯 차례 공연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카메라는 공연장으로 향하는 차 안과 사운드체크, 무대 뒤를 오가며 한 도시가 기타 음악에 어떤 의미였는지를 묻는다. 69분 동안 등장인물들은 장비 이야기보다 기억을 더 많이 꺼낸다. 이 영화가 악기 브랜드의 홍보 영상이라기보다 뉴욕 기타 신의 구술사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중심에는 Dinosaur Jr.가 있다. 밴드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출연하던 클럽마다 금지를 당했고, 공연 도중 음향 담당자가 병을 던진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 뉴욕은 «처음으로 팬과 환대를 받아본 곳»이었다. 멤버들은 부모님의 스테이션 왜건에 장비를 싣고 CBGB까지 달려가 땀범벅으로 공연한 뒤, 그대로 차를 돌려 새벽 5시쯤 집에 닿던 시절을 회상한다. 이들을 동생 밴드처럼 아끼며 미국 횡단 밴 투어에 데려갔던 뉴욕의 선배 음악인들도 등장해, 서로를 챙기던 당시 신의 분위기를 전한다.
세대마다 다른 뉴욕의 얼굴
영화는 여러 세대의 기타리스트를 차례로 비춘다. 1970년대 후반 뉴욕으로 건너온 한 음악인은 CBGB 주변에서 이미 이름난 뮤지션들과 거리에서 마주치던 공동체의 감각을 이야기한다. 그는 당시 펑크가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실험 음악이었고, CBGB의 토요일 밤 무대를 따내는 것이 성공의 정점이었다고 말한다. 쿠퍼 스퀘어 앞에서는 시인과 재즈 연주자들이 모여 시끄럽게 연주하던 거리가 이제 고급 호텔로 바뀌었다는 아쉬움도 털어놓는다.
필라델피아에서 자란 또 다른 기타리스트는 열여섯, 열일곱 살 때부터 신문에서 공연 정보를 찾아 버스를 타고 뉴욕에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는 변칙 튜닝과 카포를 활용하는 선배들의 연주를 보며 기타가 낼 수 있는 소리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회고한다. 지금도 그는 도시를 걸으며 소리를 듣는 습관을 이어간다. 분노에서 나온 소음도 있지만 누군가의 노랫소리와 리듬도 함께 들려오기 때문에, 귀를 맞추기만 하면 뉴욕은 아낌없이 영감을 내준다는 것이다. 70여 개의 언어가 쓰이는 도시답게 집 안에 있어도 살사가 들려왔다는 증언도 같은 맥락에 있다.
젊은 세대도 빠지지 않는다. 2010년대 중반부터 뉴욕의 DIY 공연장을 다녔다는 한 뮤지션은 그 시절의 생동감을 이야기하고, 고등학교 때 Sonic Youth를 처음 듣고 기타 연주의 문이 열렸다는 고백도 이어진다. 시카고 출신의 한 음악인은 American Football이 처음 뉴욕에서 공연한 날을 떠올린다. NYU에서 The Promise Ring의 오프닝을 맡았는데, 그때까지 가장 큰 무대에서 첫 곡 첫 음부터 목소리가 갈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1991년인지 1992년인지 시카고의 한 공연장에서 My Bloody Valentine과 함께 무대에 선 Dinosaur Jr.를 봤던 기억도 꺼낸다.
작은 무대, 큰 소리
공연 준비 과정에서도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사운드체크 중 한 출연자가 스태프에게 Super Reverb 앰프를 요청하며 «있으면 두 대»를 부탁한다. 야외 공연은 허가 문제로 공원 관리 당국에 의해 중단될 위기를 맞기도 한다. 작은 클럽 공연을 두고는, 관객이 빽빽하게 들어차면 사람들이 소리를 흡수해 오히려 큰 음량의 밴드도 더 듣기 편해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멤버들은 생계만 해결된다면 누구나 작은 공연장에서 연주하고 싶어 할 것이라며, 그 편이 그냥 더 즐겁다고 말한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이 수년 만에 본 최고의 무대였다고 입을 모으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